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하티르 빈 모하맛 (문단 편집) === 총리 === 집권하자마자 당시 투옥 중이었던 일부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였고, 이후 룩 이스트 정책, [[와와산 2020]] 등을 비롯한 각종 경제정책들을 마련하면서 말레이시아 성장에 힘을 쏟기 시작한다. 하지만 [[노무현|비주류였던 그가 집권하자 툰쿠-라작-후세인을 위시로 한 구주류들의 반발에 직면했고]], 그 동안 잠잠하던 [[계파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당연히 마하티르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당권을 쥐기 위해 강경책을 내세웠고, 이에 따른 구주류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당연히 구주류의 일원이었던 툰쿠는 후에 탈당하여 '46년 정신'을 창당했고, 나머지는 일단 잔류했으나 과도한 강경책이 역풍을 일으켰다. 결국 1987년 위헌정당 크리를 맞으면서 망하는 듯 싶었으나, 이듬해 신 UMNO를 창당하면서 이를 모면한다. 이것도 법조인을 자신과 비슷한 성향으로 대거 교체했고 당명에 붙었던 "신"자도 떼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초기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틍쿠 라잘레이그 함자'를 비롯한 당내 구주류계의 반발은 지속되었고, 1990년대에 접어들어 냉전이 종식되고 야당에 대한 규제가 일부 완화되면서 새로운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하티르는 만일에 대비해 구주류계 인사들에 대한 고용을 다소 배제했고, 부총리 또한 자신과 비슷한 신주류 또는 비주류계였다. 당장 1993년에 임명된 [[안와르 이브라힘]]과 같은 경우도 [[이슬람 근본주의|이슬람 원리주의]] 운동가 출신의 비주류였다. 1991년 와와산 2020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를 선진국 대열로 올려 놓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밝혔다. 하지만 현재 말레이시아는 개발도상국으로 선진국 수준에 다다르기까지 한참 모자라며, 덕분에 이 정책에 대한 의구심도 받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로서야 21세기가 어떠할 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기대가 높았고 처음에는 꽤나 그럭저럭 됐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1997년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경제위기를 피하지 못했고, 이 당시 안와르 부총리가 해임된 것이 발단이 되면서 UMNO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때문에 1999년 총선은 집권당의 패배 가능성도 있다는 일부 예측이 있었으나, 승리했다. 다만 여론의 반발을 어느정도 무마시키고자 구주류인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를 새 부총리로 임명했고 기존의 강경책을 일부 완화했다. 여하간 1999년 총선에서 위기상황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언론플레이]] 신공과 [[게리맨더링]] 신공을 발휘해서 어찌어찌 집권을 연장하는데 성공하고, 외환위기의 원인이 헤지펀드 때문이라 하여 외국자본에 강력한 제약을 걸어 국내시장을 지켜내 국제적인 지지를 얻기도 했다. 2003년 22년의 독재를 마치고 스스로 물러났다. 집권 마지막해인 2003년엔 인재양성 및 [[영어]] 실력 향상을 목표로 이과계 과목들을 영어로 바꾸는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